소나무를 벌목하며
하늘이 잔뜩 흐려 우울하게 하던 이 주일 전 일요일 아침 구거 가까이에 있던 소나무 세 그루를 베었다.
지난 가을의 태풍에 주변 산의 나무가 제법 많이 쓰러졌는데, 집 주변의 나무를 유심히 살펴보던 아내의 눈길에 문제의 소나무가 위험스럽게 여겨져 결국 수소문 끝에 산 주인의 승인을 얻어 정리를 하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 신사 수리용 나무를 벌목하며 제를 지내는 사진을 책에서 보았는데, 어제의 벌목작업에는 그저 막걸리 몇 잔으로 소나무를 이 세상에서 보내는 의식을 대신했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소나무를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어 위험하다는 우리만의 편리한 이유만으로 무작정 베어내자니 아내도 몹시 마음 아파했다.
우리는 집터를 마련하여 지난해에 집을 지으며 자리를 잡게 된 굴러온 돌이지만 소나무는 오래 전부터 산자락에 자리를 잡아 살아왔으니 박혀도 단단히 박혀있던 돌인 셈이다. 막걸리를 나무 주위에 뿌리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집을 지으면서 되도록이면 주변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하자고 생각을 많이 했지만, 결국엔 1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소나무를 세 그루나 베어내게 되었으니 그간의 고민이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나무 베는 작업을 지켜보던 동네 어르신들은 위험해 보이는데, 정리를 잘한 거라고 쉽게 말씀을 하셨지만, 짧은 기간이었지만 곁에서 이웃으로 지내던 나무를 그루터기까지 잘라내 버리니 마냥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 이를 데 없다.
제일 굵은 나무 밑동의 나이테를 세어보니 50살을 조금 넘은 듯하니 결국 동갑내기 동료를 밀쳐낸 꼴이 되었고, 골짜기에 드리웠던 여유로운 그림자는 소나무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지난 일요일에 주변을 정리하며 보니, 휑하니 소나무가 자리 잡았던 터에는 영하의 찬바람만이 스치고 있었다.
세상사는 잃는 것과 얻는 것이 늘 공존하는 법, 잃은 것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소나무 그늘에 가려 눈치 보듯 살고 있던 뽕나무는 오히려 돌연 양지로 드러나게 되었다. 소나무를 베어낸 아쉬움을 내년에 어린 손자 녀석과 즐겁게 오디를 따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위로를 해 주고 있으니, 나 역시 쉽게 결정하고 편하게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반성할 줄 모르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도 나름대로 골짜기를 지켜가며 존재해온 이유가 있었을 터인데, 오랜 세월 유지해온 질서를 인간으로 잠시 실권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또 한번 파괴한 꼴이 되었으니, 그저 우주 속 티끌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란 이렇게 제 위주로만 쉽게 생각하는 어리석은 존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