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정리하며
때이른 서리를 맞아 엉망이 된 무우를 걷으며 일찌감치 마무리했던 올해 농사는 옥수수를 기대이상으로 거두었을 뿐, 지난해에 비해 신통치 않았다.
봄에 손자녀석까지 한몫을 거들었기에 기대했던 콩 수확은 완전 백지로 결론이 나 버렸고, 팥 역시 비슷한 수준, 고구마는 지난해의 절반도 거두지 못했다.
지난 8월에 서울에는 25일인가를 흐리고 비가 뿌렸다고 하니 일조량 부족이 그 주된 원인이려니 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말마다 잠시 쉴 새 없이 밭에서 머물며 지냈고, 작년 수준의 비료도 주었는데, 실망이 컸다.
콩 밭에는 대표적인 해충인 잘룩 허리노린재가 지난해에 비해 눈에 많이 띄었지만, 사마귀 역시 기대이상으로 많이 보이기에 사마귀를 믿고 농약은 전혀 치지 않았던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콩깍지는 달렸지만, 절반이상은 비어있고, 들어있는 깍지 역시 모두 거뭇거뭇 썩어있어 하나도 거두지 못하고 콩대 채로 그냥 밭에 꺾어 버리고 말았다.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알아보니 올해 날씨가 궂어 콩 작황이 나쁘기도 하지만, 콩 역시 아무데나 심어서 그냥 거둘 수 있는게 아니고, 때 맞춰 농약도 뿌리고, 신경을 써 주어야 한단다.
나는 전업 농부가 아니니 수확량이 적든, 품질이 떨어지든 상관없이 건강한 수확물을 거두면 그만이기는 하다. 아직은 콩 몇 되를 더 거두자고 마스크 쓰고 농약 뿌리며 마음조리고 싶지 않다.
올해는 아내가 주말 농사 과정을 메모로 모두 남겨 놓았으니 내년 봄 농사부터는 좀더 계획성 있게 진행 할 수 있으려니 하는 희망을 해보지만, 모두가 하늘의 뜻에 달렸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자연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무력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밭에 덮었던 검정 비닐을 걷어내니 내 마음도 개운해 졌다. 이른 봄부터 여름 내내 비닐 속에 덮여 있었으니 말은 못해도 얼마나 갑갑했겠냐고 아내는 말끔히 비닐을 걷어냈다.
비닐 속 흙은 무생물의 세계처럼 완전히 죽어있는 느낌이었다. 비닐을 덮지 않았던 고랑에는 여름 내내 잡초가 잘 자라 우리를 괴롭혔는데, 검정 색으로 덮은 비닐 속은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지난해 겨울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 몰랐던 사실이다.
아내는 겨울 동안이라도 숨을 쉬게 해줄 수 있으니 마음이 아주 시원스레 편해진다고 했다. 햇볕이 미치지 않는 비닐 속에서 숨죽이며 갑갑하게 갇혀 지냈을 수많은 생물을 머릿속에 그려보았기에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게다.
인간이 잠시 득세를 하고 있는 사이에 인간의 끝 없는 욕심으로 많은 생물들이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고 있지만, 세상살이 모두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
조화롭고 건강한 환경으로 텃밭 꾸리기를 내년에는 좀더 심각히 고민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