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과 함께 찾아온 봄
지난해 봄에 시기를 맞추지 못해 제대로 볼 수 없었기에 반신반의하며 거두어 두었다가 가을에 다시 마당에 심어준 녀석들이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쫑긋 쫑긋 솟아나며 봄을 열어 주었다. 이웃에서 얻어온 짚을 덮어주며 겨울나기에 도움이 될까 하고 기대를 했었는데, 거짓말처럼 화사한 자태를 뽐내며 봄소식을 전해 준 것이다.
아직 어론리에서 튤립을 본 적이 없기에 혹시나 했는데, 땅속에서 숨죽이고 겨울을 난 녀석들이 소리없이 솟아오르고, 일주일 사이에 수선화가 네 송이, 배꽃이 탐스럽게 피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 말로 생명의 신비를 실감하게 해준 하늘의 선물이다.
올 봄에는 유난히 꽃다지, 냉이가 집 주변에 많이 피어 장식을 해 주었지만, 내가 직접 가꾸며 돌보는 생명체가 겨울을 견디고, 봄소식을 전한다니 기쁘고, 반갑기 이를 데가 없다. 어느새 뒷 골짜기의 귀룽나무, 조팝나무 흰 꽃이 올해도 어김없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이웃 손선생 댁에서 얻어와 심었던 금낭화가 빨간 복주머니를 줄줄이 달고 봄바람을 즐기고 있고, 산 괴불 주머니는 노랑 꽃을 자랑하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다.
얼마 전 때아닌 시기에 퍼부은 폭우로 도롱뇽 알주머니가 몽땅 떠내려간 탓일까 골짜기에 올챙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겨울이 너무 춥네 어쩌네 툴툴대며 지내지만, 주변의 다른 생명체는 주어진 자연 조건에 순응하며 너그럽게 세상을 살아간다. 몇해전 가을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서 훼손된 골짜기에서 사라졌던 괭이눈 몇 포기가 눈에 띄는 걸 보며 사람이 손대지 않아도 자연 스스로 회복이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미국에서는 국립공원에 산불이 나거나 해충 피해를 입어나 해도 인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고 그냥 놓아둔다고 한다. 스스로 회복이 되도록 기다려 준다는 여유로움, 도움을 주려다가 오히려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인간 지식의 한계를 이미 느꼈음이 아닐까 한다.
지난해 봄에 심었던 소나무 묘목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겨울을 넘긴 녀석들 중에서 일부는 병이 들은 탓인지 잎이 누렇게 마르고 있는 것이 보이지만, 농약을 뿌리느니 그냥 두기로 했다. 도태되기도 하고, 스스로 회복이 되기도 하는 자연의 능력을 믿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한달 정도가 지금 내린 결정의 잘잘못을 가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