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텃밭에 심은 옥수수를 예년에 비해 조금 일찍 거두었다. 적은 양의 씨앗을 구하기가 곤란하여 봄에 모종을 사서 일찍 심은 탓이다. 모종을 심자마자 날이 사정없이 가물었고, 올해도 역시 화학비료는 전혀 주지 않아 주변의 밭에서 크는 옥수수에 비해 초등학생을 보듯 꼬마처럼 작고 연약하게 자랐지만, 기특하게도 작게나마 옥수수는 모두 달렸다.
내다가 팔 옥수수가 아니니 작지만 건강한 열매를 거두는 느낌은 언제나 각별하다.
모종을 심을 때 보면 늘 몇 개는 키가 아주 작거나 이파리가 신통치 않은 놈들이 있고, 작은 포트 한 구멍에 서로 비비며 크는 녀석들도 있어서 밭에 옮겨 심을 때 쪼개어 심기도 한다.
뜯어 놓고 나면 아무래도 엉겼던 뿌리가 끊어지면서 빈약하고 시원치 않게 되니, 이 녀석들이 제대로 커서 뭐가 달리려나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모종이 자리를 잡고 크기 시작하면 곁순이 심하게 나와 손질을 해 줘야 하기도 하고, 유난히도 못 생겨서 제대로 못 자라며 눈치를 받게 되는 놈들도 있다. 밭은 돌보며 그런 녀석들에게 눈길이 더 가게 마련이다. 이놈들이 과연 내가 흘린 땀 값이나 하려나 하는 마음으로.
올해에도 신통치 않던 녀석들도 작지만 옥수수 모양을 갖춘 열매가 달렸다.
아무리 못생기고, 상대적으로 빈약하더라도 결국 자손을 남기려는 타고난 본능은 2세를 남긴 것이다.
인간세상도 사실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공부를 조금 못한다거나, 키가 또래보다 작거나, 인물이 처진다고 부모들은 안달을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무리수를 동원하기도 한다.
과연 누구의 행복을 위한 조치일까?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넘기고 있는 손자녀석에게 기대하는 수준을 어디에 두어야 옳은 것일까? 학원에 묶어 놓아, 성적을 조금 더 올려보려고 하는 부모의 스트레스가 과연 원하는 결실을 거두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려나? 녀석의 키가 크는 만큼이나 의문도 함께 커지고 있다.
못난 옥수수도 결국 나름대로 열매를 맺듯이 사람도 역시 제 몫은 하게 마련이거늘. 이 역시 “Let it be”하며 기다리기가 정답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