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홍천 집 옆의 산 주인은 벌목을 핑계 삼아 집 뒤의 더덕 밭을 중장비로 마구 뭉개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내버렸다. 개울 옆 소나무 세 그루를 베어낸 자리가 아직도 휑하게 느껴지는데, 잣나무와 낙엽송을 수없이 베어낸 후 산허리를 가로질러 트럭이 지나갈 길을 낸 것이다. 인간은 이래도 되는건가 끔찍한 흉터처럼 도로가 난 자리의 무너져 내린 흙더미, 자갈더미가 올 여름 장마철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불안해 보이기만 한다. 산아래 농사를 짓고 있는 이웃 어른이 농사짓는데 그늘이 지니 벌목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한다. 농사를 짓기에 그늘이 얼마나 지장을 주는지 모르지만, 밭에 심은 농작물을 다만 얼마라도 더 거두어 보겠다는 욕심이 산 기슭 한 면을 깡그리 베어내게 된 결과를 낳았다. 수십년된 낙엽송을 빡빡 밀어내듯 베어낸 급경사의 산은 몇 십 년은 기다려도 복구가 될지 모를 흉한 모습으로 남았다. 이른 새벽마다 집 주변에서 아침 잠을 깨우듯 지저귀던 새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과연 산의 주인은 누구인가? 몇 년 전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를 읽고 나서 ‘면역력이 전혀 필요 없던 환경에서 행복하게 삶을 이어오던 인디언에게 컬럼버스는 지옥으로부터 찾아온 악마였던 것이다. 전염병을 퍼뜨리고, 위스키로서 파멸의 길을 열어 주고 자연을 파괴하고...’ 라고 적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며칠 전 읽은 도종환님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에서 ‘대지에 절해야 한다’ 라는 글이 가슴에 와 닿았기에 여기에 옮겨 놓았다.
자연은 자연의 것이다. 산은 산이 주인이고 나무는 나무가 자기의 주인이다. 대지는 대지의 것이고 우주는 우주 그 자체가 주인이다. 인간의 것이 아니다. 강과 땅과 산이 자기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인간위주의 사고방식이다. 인간이 자연의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 이기적인 태도다. 오만한 자세다.
인간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도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우주의 일부이다. 인간이 소우주이면 산도 토끼 한 마리도 떡갈나무도 개미도 붓꽃도 저마다는 다 소우주를 이루고 있다. 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잠시 같이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잘 해야 한다. 삼보일배(三保一杯)하는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대지에 절을 하며 겸손해지고 대지에 절하며 사죄해야 한다.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주제넘게 강을 파헤치고, 산허리를 잘라 고속도로를 내고,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인간의 앞날을 누가 돌보아 줄 것인가? 역시 자연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