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까지 해서, 어느새 내 키를 넘기며 잘 익은 옥수수를 거의 다 거두었다. 풍암리 장터에서 모종을 사기도 하고, 양평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서 얻은 종자를 심었는데 미리 약품처리를 해서 상품화 해둔 탓인지 대부분 건강하게 잘 주었다. 봄에 퇴비를 주고, 한창 자랄 무렵 복합 비료를 조금, 종자 달릴 즈음 추비를 조금 더 준 것 외에 농약은 별도로 주지도 않았고, 막바지에 엄청 퍼지기 시작한 잡초도 제대로 뽑아주지 못했지만, 노력을 기울인 것에 비하면 엄청 잘 자라 훌륭히 2세를 남긴 녀석들을 거두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년생인 옥수수를 인간의 삶에 비하면 마냥 짧기만 하고, 한번 자리를 잡게 되면 꼼짝마라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생물인데, 제대로 돌봐주지도 않고 잘 거두기만을 기대했구나 하며, 뒤 늦게 반성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겨울이 워낙 추워서 그런지 올해 밭에는 벌레가 적게 끼었고, 고추에도 진딧물은 없었다. 지난해에는 옥수수를 갉아먹는 벌레를 별로 볼 수가 없었는데, 올해엔 옥수수 깊숙이 파고든 놈들이 수없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보다 조금 늦게 거두기 사작해서일까 모르지만, 식구들끼리 먹자고 기른 옥수수에 벌레가 낀 걸 보면서 오히려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옥수수 바로 옆 콩을 심은 고랑에는 지난해처럼 큼지막한 사마귀가 숨을 죽이고 여기저기 숨어있어 반갑기 이를데 없다.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는 분이 예전에는 예쁘게만 보았던 노랑나비, 배추 흰나비 같은 녀석들이 웬수처럼 보인다고 글을 적었던데, 흉측스럽게 보이던 사마귀가 어느새 반가운 손님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집 주변이나 밭에는 며칠만 발걸음을 소홀히 하면 거미줄이 사방에 쳐진다. 역시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녀석들이다.
이미 고개를 숙인 벼가 자리를 잡고 있는 집 근처 논에는 농약을 뿌리느라 분주하던데, 나는 봄에 심은 과실 수 몇그루에서 열심히 잎을 갉아먹고 있는 벌레만 잡아내고 말았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그렇게 많이 번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 집 근처에는 농약을 거의 안 뿌린다는 소문이 난걸까 새파란 녀석들이 사방에 퍼져 자리를 잡은 것이다.
자주 돌아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눈에 띄는 대로 잡아내면 되지 하다가도, 그 녀석들도 이세상에 나온 생명체인데 함께 나누어 주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 맴돌았다. 유난히 옥수수를 좋아하는 손자녀석은 지난해에 옥수수를 함께 따던 기억이 남아있어서 인지 옥수수 따러 가자 하면 정말 즐거워 하며 앞장서서 잡초가 수북한 밭으로 향했다.
농약을 안쳤으니 마음편히 따먹기도 하고 어린 녀석과 부담 없이 헤집고 다닐 수가 있지만, 아직도 징그럽게만 보이는 벌레가 자주 눈에 띄니 얼마큼을 양보하는 것이 지혜로운 농사법일까 정답은 멀고, 자꾸 망설여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