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9. 5. 18:00

너무 잘나가면 잘리는 세상....

요즘은 매봉 전철역을 출 퇴근길에 이용하고있다. 도곡역에서 매봉역으로 옮긴 이유는 거리로는 전철 반정거장 정도를 더 걸어야 하지만, 가로수로 심겨진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와 아파트 담장 너머로 싱싱한 푸르름을 자랑하고있는 느티나무를 즐기기 위함이었다.
출근길 도곡역에서 회사에 이르는 인도는 제법 복잡하기도 하도, 늘 맞바람 치는 길목에 아침부터 신경이 쓰일 정도로 남을 괴롭히는 애연가가 너무 많기에 어느 날 슬그머니 매봉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매봉역에서 회사까지는 10분 정도 걸리는데, 도중에는 건널목이 있어 잠시 한쪽으로 기울었던 생각을 제자리로 되돌리게 해주는 정신 정거장(?) 노릇을 해 주고 있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잠시나마 짙은 초록 아래를 걸으며 하루 계획을 꾸리고, 퇴근길에는 사무실에서 보낸 하루를 이리 저리 되돌아볼 수도 있으니 짧은 거리이기는 하나 걷기 운동까지 하게 해주는, 일거삼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구청에서 태풍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양버즘 나무를 기계톱으로 마구 쳐내서 항암제를 맞는 말기 암환자의 머리모양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다지 큰 나무들도 아니었는데... 이젠 하늘이 훤히 내다보이는 볼품없는 출근길로 전락해버려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없다. 집안에 키우는 화분도 작을 때는 너무 작다고 빨리 크기만을 기다리다가, 훌쩍 커버린 뒤로는 화분무게에 쩔쩔매게 되면서 오히려 부담이 되어 눈총을 주게 되기 마련인데, 가로수도 같은 처지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초록만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천천히 자라며 그 키를 지키고 있었다면 톱 세례는 면할 수 있었겠지만 반대로 잘 안 크는 종자라면 가로수로 선택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광화문 네거리에 가로수로 자리잡고 있는 마로니에도 곧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너무 잘 나가면 시샘을 해 자리에서 가차 없이 밀쳐내는 정치인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이젠 하루 빨리 새 가지가 돋아나 다시 초록으로 하늘을 덮어 주기만을 기다릴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