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마지막 주말, 오랜만에 풍암리 장날을 맞아 구경을 나섰다.
음력으로 삼월 중순인 내 생일 무렵에는 두릅 새순이 장에 나온다. 아내는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내 생일 무렵이면 두릅을 삶아 봄소식을 실감하게 해주고 있다. 향긋하고 약간 쌉사름 하면서도 개운한 느낌의 두릅은 강원도 귀둔리에서 군대 생활을 하던 시절 뒷산에서 따서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가시가 돋친 허연 두릅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있는 산 비탈도 있었으니 그때는 귀한 줄 도 모르고 먹었다.
언제부터인가 시장에서 파는 두릅은 거의 잎이 한 뼘이 넘게 자란 것들이 팔리고 있다. 귀하다 보니 크게 키워 팔아보려는 속셈이 깔린 탓일까? 아내는 순이 덜 자란 놈을 구한다며 좌판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엄나무 순, 봄나물을 섞어 한 봉지를 샀다.
지난해 가을에 옆 개울너머에서 옮겨 심어놓은 두릅은 이제 겨우 허리 높이만큼 밖에 자라지 않았는데, 두릅나무를 직접 나무에서 따보지 못한 아내는 새순을 따내면 나무는 어찌되느냐고 궁금해 한다. 새순을 따내도 곁에서 작은 곁순이 나와 죽지는 않는다고 하니 미안해서 어찌 따겠느냐고 되묻는다.
지난해에 동네 이웃 어른께서 지나는 길에 건네 주고 가셔서 앞마당에 심었던 엄나무 두 그루는 추운 겨울을 잘 넘기고 어느새 어린 애기 손바닥 같은 예쁜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개 두릅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봄이 되면 두릅만큼이나 사람들의 손에 시달리는 가엾은 나무지만, 한겨울 이파리를 모두 떨군 후에도 돋아난 가시를 반짝이며 예쁜 모습을 보여 주기에 앞마당에 자리를 잡게 된 녀석 들이다.
추운 겨울을 견뎌 내고, 힘겹게 돋아내는 새순을 따낸다니 잔인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무자비한 폭행을 나무에 저지르는 셈이 된다. 고로쇠 나무 수액을 훔쳐먹고, 봄나물을 뿌리 채 캐내고 하면서 사람들은 나만 건강해 지겠노라 하면서 조금 덜먹어도, 안 먹어도 지장 없는 먹거리를 장만한다고 주변을 사정없이 휘저으며 살아가고 있다.
즐기기 위해 산 생명을 해치는 짐승은 사람 밖엔 없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먹는 걸로 건강을 지켜보려는 몬도가네식 정신병 환자 수준의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어느새 넉넉히 먹고 살만해진 탓일까 TV프로에서도 전국의 식당 순례를 하며 보양식이네 맛을 내는 비법이네 뭐네 하며 결국은 살생을 부추기고 있다.
나 역시 지난 겨울 고라니나 토끼 같은 뒷산의 주인이 겨우 살려 놓은 소나무 순이나 딸기 잎을 따먹어버려 적지 않게 죽게 된 피해자이고, 서로 Win-Win 절충할 수 있는 경계가 어디일까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물러서서 양보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그려보며 봄날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