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녀석이 제법 커서 돌이 지나니 나날이 말귀를 알아듣는 수준이 높아지고 있고, 어느새 어른들의 시선도 조금씩 의식하기 시작했다.
오래 전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가,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과거에 무심히 지나쳤던 중요한 사실들을 주말에 손자를 만날 적마다 하나 둘 마음속에 되새기고 있다.
우리는 어린 아기를 부처라 하면서도 부처라 할 수밖에 없다는 참된 의미를 생각해 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무심히 관념 속에 머물면서 그런 사실을 잊고 산다. 관념은 세상살이에 당연히 필요하지만 문제는 그 관념의 바탕을 되돌아보지 않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얽매인다는데 있다. 과학이라는 단어에 맹신을 하고, 증명된 것처럼 인정받는 과학으로 밝혔음에 그냥 이끌려 가며 그 진실 여부를 잊게 되는 것처럼…
예절이나 도덕 같은 것은 세상살이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예절이나 도덕은 절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며, 시대에 따라 또는 주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옳고 그름이 바뀔 수 있다. 어제의 중 죄인이 내일에는 무죄로 인정받기도 하고, 나의 입장에서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평가하고, 가끔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른들의 세상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어른들은 아기에게 필요할 것으로 일방적으로 결정 한 후 옳고 그름을 뒤로 하고는 바로 지식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나 또한 그렇게 뭔가를 가르치고 있다. 아기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며 정확히 지금 이순간에 살아가고 있다. 잠시 후에는 이렇게 될꺼다, 내일에는 또 이렇게,,, 남이 보면 어쩌나,,, 이런 식의 관념에 사로잡힌 판단은 하지 않는다.
배고프면 울며 보채서 전혀 눈치보지 않으며 젖을 얻어 먹고, 졸리면 아무 때나,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 관계없이 눈을 붙인다. 위험한지 어떨지 알아보려 하지 않고 바로 입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완벽한 부처로 머물고 있다가 조금씩 이런저런 앞뒤 계산을 하게 되고, 그간 배운 온갖 지식과 관념을 동원해서 판단을 하면서 생활하며 자신도 모르게 부처로부터 멀어져. 결국 자기가 부처였다는 사실조차 완벽하게 잊고는 이루지 못할 목표를 꿈꾸며 살아가게 된다.
세상살이에는 오름세와 내림세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공존 할 수 밖에는 없음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되겠지만, 지금의 교육제도, 입시제도는 오름세만을, 얻기만을 위한 방편은 가르치지만, 그 양면성을 일러주지는 않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할까? 정답 없는 의문이 줄지어 머릿속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