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30. 08:09

손자녀석 돌잔치를 지켜보며

지난해 12월 세상에 나온 녀석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일년이 되어 돌 잔치를 지켜 보았다.

이제는 알아듣는 말도 늘어나 재롱 잔치의 수준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는데, 아내와 나누는 대화에도 그 녀석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며칠 전 부서의 직원 아이가 외고에 합격 했다 하기에 축하를 하다가, 갑갑한 이야기를 들었다. 외고 생활을 미리 준비시키려고 고교수학 과정을 지도하는 학원을 보내려 했더니, 3이면 수강생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편이더라 하면서 걱정스런 말을 하기에 아니 재수도 안 했는데 무슨 뜻인가? 물었더니, 고등학교 수학을 초등학생들이 배우러 다닌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걱정스럽게 여기고는 있었지만,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미리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천재가 아닌 일반 초등학생이 미적분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언젠가 TV 에서 인도의 입시지옥에 대해 본적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인도의 명문학교 진학 전쟁 수준은 이미 오래 전에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아내는 홍성의 시골학교에서 열 몇 명을 한 반에 놓고 집인 식구처럼 가르치다가 한 반에 30명이 넘는 천안 근교에 있는 학교로 옮기더니 그 지역 학교, 학원, 학부형들의 문제를 자주 이야기하고 있는데, 불과 몇 년 후가 되면 손자녀석이 그런 환경에 노출되며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 더욱 갑갑하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맞벌이 부모가 처한 문제점은 자녀의 교육환경에 직결되고 있으니 걱정스런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초등학교 일학년부터 시험을 쳐야 하는 해괴한 교육제도가 곧 피부에 와 닺는 처지가 된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일년 내내 공포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6학년 담임 선생님의 성함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그 시기의 괴로움이 너무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시절에는 광화문 네거리 근처의 서울 덕수 국민학교의 명성이 자자 했는데, 전에 덕수 국민학교에서 가르쳤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준 정신병 환자 정도로만 뇌리에 남아있다. 시험은 왜 그렇게 자주 보았는지 몰라도 시험 성적이 집계가 될 때쯤이면 매맞을 생각을 해야 했다. 점수와 관계없이 석차가 오르내림에 따라 얻어맞아야 하는 몽둥이 수가 정해졌다. 석차가 내린 수만큼 몽둥이(물걸레질하는 청소 막대)로 머리통을 맞았는데 한대씩 맞을 적마다 그 충격으로 귀속에서는 윙윙하는 소리가 한참을 이어졌고, 여기저기 혹이 툭툭 돋았다. 석차가 오르면 다음에 내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오히려 제자리에 머물기를 바랬고, 석차가 올라 맞지 않아도 되는 결과가 나오면 석차가 오른 나 때문에 맞아야 하는 반 친구들의 걱정스런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함께 수없이 몽둥이를 맞아야 했다. 점수가 올라도 석차가 내리면 무조건 맞아야 했으니 늘 억울했다. 석차가 오르면 다음 시험이 걱정되었고, 내리면 맞아야 했으니 두려웠고, 선생님이라기 보다는 몽둥이질을 즐기는 악마라는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초등학교 6학년 어린애들을 두들기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저 이름있는 학교에 제자를 많이 들여보냈다는 자부심을 누려보기 위해 그렇게 제자들을 몽둥이로 그것도 하필이면 머리통을 골라서 때린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어찌되었을까? 이미 교육청에 고발을 당해 된서리를 몇 번이고 맞았을 처지였겠고, 아마 인터넷에 올라 난도질을 당하고도 남았을 교육방법이었다. 그렇게 수없이 맞고도 집에 돌아와서 누구에게 일러보려 해본 적이 없는데, 요즘이라면 어찌 했을지 나도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무작정 매질을 하는 교육환경은 면한 것 같은데, 성폭력이니 어쩌니 예전에는 들어볼 수 조차 없었던 고약스런 분위기로 바뀌었고, 인성교육은 멀어진지 오래고, 그저 성적순으로 제자를 줄 세우는, 아니 줄을 세울 수밖에 없는 교육으로 전락했다. 예전에는 온 가족의 축하와 함께 시작했던 초등학교 일학년이 성적순 줄서기 연습장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까지 6년 정도 남았는데, 그 동안 학교 교육 정책이 바뀌기를 기대해 봐야 소용없겠고, 그 분위기를 이겨내는 용기와 인내심을 키워주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만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