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서 소근소근/비처럼 음악처럼'에 해당되는 글 121건

  1. 2005.08.29 옛 그림의 색채 (오주석 님)
  2. 2005.08.27 옛 그림의 여백 (오주석 님)
  3. 2005.08.25 실로 (失路)
  4. 2005.08.25 이해 (利害)
  5. 2005.08.23 축구는 아름다워 (축구 칼럼리스트 서형욱 님)
  6. 2005.08.19 별로 떠난 왕자 <앙뜨완 드 생텍쥐페리> 이윤기 님
  7. 2005.08.18 영혼을 위한 음식 (유시화 님)
  8. 2005.08.17 무소유 (범정스님)
  9. 2005.08.08 부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10. 2005.08.08 달라이 라마의 "용서" 에서
2005. 8. 29. 18:17

옛 그림의 색채 (오주석 님)

과거 우리를 포함한 중국문화권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 나아가 우주의 삼라만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여서 순간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고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 변화무쌍하고 무상하기 그지없어보이는 현상의 근저에서 불변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 또한 병행되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의 노장老莊 사상, 『주역周易』의 세계관, 불교의 윤회설 등으로 펼쳐졌다.
이태백은 늦은 봄날 아름다운 복사꽃과 오앗꽃이 시들 것을 근심하여, 좋은 계절이 너무나 아까우니 밤에도 촛불을 들고 놀자고 하였다. 그것은 무정하기 그지없는 시간의 힘에 대한 시인의 비극적인 인식과 낭만적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찌 꽃뿐이랴? 19세기 우리 나라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의 천재화가 전기田琦가 서른 살 꽃다운 나이로 죽었을 때, 친구 조희룡은 이렇게 비통해 하였다. “흙이 정情 없는 물건이라지만, 과연 이런 사람의 열 손가락도 썩게 하는가!”라고…
그러나 옛사람들이 인간의 정서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속성에 절망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현상의 무상함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던 그들은 한편으로 결코 곁에 드러난 외양에만 붙잡히지 않는 현명함을 또한 갖추게 되었다. 옛사람의 눈은 이러한 마음자리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위대한 인간 또는 자연의 형상도 그 자체가 영원하다고는 보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렇게 그리지도 않았다. 현상은 변화하는 것이고 위대한 것은 오직 거기에 깃들었던 인간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그래서 사물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보았다. 마음을 그리는 것이었으므로 눈에 보이는 형태 그 자체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며 특히 현상 속에 드러나는 색채 효과에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 풍토는 결국 점차 색깔을 배제하고 ‘수묵으로 그린 작품(水墨畵)’에 대한 사랑을 배양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나온 동양회화사의 전개를 살펴보면 수묵화는 역사 발전의 시작과 발전 단계에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난만한 채색화의 숲을 지난 원숙기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옛 그림에서는 사계절 푸르른 대나무도 먹색으로 그리며 붉고 화사한 모란꽃도 수묵으로 그린다. 한편 늘 푸른 하늘과 물빛은 화폭 속에 빈 여백으로 놓아둘 뿐 어떠한 색도 칠하지 않는다. 재기 발랄한 문인화가 소동파蘇東坡가 언젠가 붉은색으로 대나무를 그리자 사람들은 세상에 빨간 대나무가 어디 있느냐고 비난하였다. 그러자 동파는 그럼 세상에 새까만 대나무는 또 어디 있느냐고 답하였다. 눈보다는 마음으로 보고 사물의 외양보다는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정신이 바로 수묵의 마음이다.
수묵화에서 선을 긋고 바림하는 데 사용하는 먹물은 무채색이다. 무채색이란 ‘색깔이 없다’ 색깔이 아니다, 라는 뜻이다. 실제로 검정은 안료顔料 상태에서 화려한 보색補色들을 서로 합침으로써 이루어지며, 광선에서는 모든 빛이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즉 가시광선의 스펙트럼 속에는 없는 색으로서 물리학의 입장에서 엄밀하게 보면 색이 아닌 것이다. 흑색, 회색, 백색 등 무채색의 무리는 모든 유채색이 색을 잃음으로써 남겨지는 모습이다. 이렇게 모든 색은 언젠가 바래고 없어진다는 관념 또한 전형적인 동양적 사고의 하나다.
무채색은 온갖 색이 바래져서 화려함을 잃은 마지막 모습이다. 그런데 옛부터 ‘먹에는 온갖 색이 들어 었다墨有五彩’ 는 말이 또한 전한다. 이것은 무채색이 모든 색의 소멸로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모든 유채색이 이로부터 새로 시작되는 근원이기도 하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실제로 먹물에는 소량의 청색 또는 갈색 기운이 섞여있다. 그러므로 특히 흐린 먹의 바림 속에서 이들 먹 안의 색채 요소는 극소량임에도 불구하고 무성격한 회색조를 바탕으로 해서 아주미세하지만 말할 수 없이 은은하며 무한한 색조의 변화를 드러낸다.
흑색은 참으로 신비롭다. 그것은 다채로운 유채색들이 그 화려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노년의 원숙한 경지에 이르른 것이다. 무채색은 지극히 순수하고 검소해서 내면의 정신적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므로 승려의 장삼빛이 회색이고 신부와 수녀 복장이 무채색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한편 검정색은 역설적으로 색 가운데서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기도 하다. 현대 패션의 거장들이 단일 색상 가운데 가장 즐겨 사용하는 색이 다름 아닌 검정색이라는 통계가 있다. 또 최고급 승용차의 색상이 검정인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동서양의 회화 작품 가운데서 가장 극적인 예를 들어보자. 20세기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는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방스(Vence) 성당에 성화를 그렸다. 마티스는 유럽 미술의 유구한 전통에 충실했던 정통파 화가로서, 리드미컬한 선과 화사한 원색을 거리낌없이 구사하면서 삶의 기쁨을 찬미해온 색채의 마술사였다. 그런데 그 위대한 색채 화가 마티스가 85세로 죽기 직전에 온 생애의 역량을 쏟아 부어 제작한 성화 작품은 바로 수묵화처럼 하얀 타일 위에 검정 선만을 사용한 작품이었다. 마티스는 왜 검정색으로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하였을까? 선이건 면이건 색채를 사용한 형태는 반드시 그 색깔이 환기하는 나름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세속의 감각적인 것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종교화에서는 가장 중성적인 색깔, 아니 색깔이 아닌 검정을 사용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글씨를 검정으로 인쇄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색깔이 아닌 먹으로써 일체의 외적 사물과 그들이 풍겨내는 잡다한 인상으로부터 독자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이다.
물론 종교화라고 화려한 채색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양의 대성당 벽화나 사찰의 탱화와 단청에서 보듯이 찬란하기 그지없는 극채색 작품이 더욱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런 작품에서는 다양한 색깔들을 전체 도상圖像의 일부로 극히 정교하게 부분부분에 한정하여 사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 종교가 지향하는 지고한 이상을 화려 장엄하게 제시하는 데에 봉사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종교 수행인의 마음 자세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일반 신도들의 마음에 내세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주기 위한 장식이었다.
이제 우리는 상대적으로 흑백의 수묵화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수묵화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가능케 한다. 수묵화는 회화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양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정신적인 것이다. 그것은 명상을 낳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들은 회색이 생리학적으로 시각 속에서 완전한 평형 상태를 낳는다고 말한다. 눈과 뇌를 연결하는 시각신경은 회색을 바탕으로 한 평형 상태를 요구하며, 이 회색이 없을 때에는 심지어 정신적 불안정 상태까지 초래된다고 한다.
수묵화의 화면은 전체적으로 회색조를 이룸으로써 항상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고 안정감을 준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동양의 수묵화가들은 대체로 장수를 누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색채 화가들, 특히 종교화에서와 같은 고전적 균형과 온건함을 벗어나서 난폭하게 색채 자체에만 탐닉했던 서양의 낭만파 이래의 화가들은 단명한 쪽이 훨씬 더 많았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작품이 시각적으로 지나치게 자극적이기 때문이었다.
수묵화는 점잖아서 보는 이를 자극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감상자가 평정한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그림 속의 세계로 스스로 들어올 것을 요구한다. 수묵화의 감상은 감각되는 형상에 수동적으로 지배되고 압도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보는 이가 사전에 풍부한 시각 경험을 쌓고 또 다양한 인생의 체험을 겪은 후에, 그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은근하게 작품이 암시하는 격조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흔히 문인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천 리의 먼 길을 다녀보고 만 권의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行千里路 讀萬卷書’ 고 한다. 이 말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2005. 8. 27. 15:43

옛 그림의 여백 (오주석 님)

우리 옛 그림에는 서양화에 없는 여백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화가가 그림 바탕을 전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현상적으로는 ‘나머지 흰 부분’ 화면의 ‘빈 부분’ 이다. 그러나 여백은 정말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백에는 그려진 형상보다 더 심오한 것이 더 많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최상의 화가는 형상을 위하여 여백을 이용한다기보다 오히려 여백을 음미하기 위하여 형상을 그린다.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가 바로그대표적인 예이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흰 것을 알고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의 모범이 되리라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고 하였다. 이 말은 물론 그림에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도道에 관한 하나의 비유였지만, ‘지백수흑知白守黑’ 은 그 뜻하는 내용의 절실함으로 인하여 곧 서예 작품에서 구성의 근본 원리로 확립되었다. 그리고 서예의 원리는 그대로 옛 그림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전통사상에서 백색은 순양純陽의 빛깔이며 흑색은 순음純陰의 빛깔이다. 따라서 양陽은 형이상학적인 원천을 상징하고 음 陰은 형이하학적인 내용을 이룬다고 할 때 여백이 가지는 심오한 뜻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백은 그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각에도 여백이 있다. 조각이 3차원 속의 덩어리라면 그것을 둘러싼 공간은 여백이다. 공간이 없는 덩어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공간이 덩어리를 에워싸고, 덩어리와 어우러져 서로 침투하고 서로를 낳아야 한다 음악에도 여백이 있다 누군가 ‘음악은 침묵이라는 하얀 백지장 위에 소리라는 붓으로 그려낸 그림’ 이라 하였다. 또 허공을 맴도는 음악이 그대로 얼어붙으면 조각이 된다고도 하였다. 그러므로 침묵의 여백이 조금이라도 더러워지고 손상되었을 때 심금을 울리게 하는 음악이란 있을 수 없다.
여백은 궁극적으로 마음의 여백이다. 우리 겨레의 큰 자랑거리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속칭 에밀레종의 한 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그 첫머리에 새겨져 있다.

대저 지극한 도道는 형상 이외의 것까지 포함하나니 보아도 그 근원이 보이지 않으며, 참으로 큰 소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진동하나니 들어도 그 울림이 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설假說에 의지해 펼쳐서 참 진리의 심오한 뜻을 보며, 신종神鐘을 매달아 올려서 한 진리(일승一乘)의 둥근 소리(원음圓音)를 깨닫는다.

우리는 에밀레종의 둥실하고 어질기 그지없는 울림을 듣고 감격한다.
저 종의 당목撞木이 당좌撞座를 때리는 순간, 마치 우주의 중심이 울리는 듯한 숭고함과 장중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둥근 소리가 무한히 멀리 퍼져 나가고 또 무한히 작아지면서 끝없는 동심원同心圓의 파문을 긋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중생을 향한 음音의 여백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그 무음無音의 여백이 없었더라면 에밀레종 소리 또한 잡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천자문千字文』은 “하늘은 검붉고 땅은 누렇다天地玄黃”로 시작된다.
하늘 빛은 푸른 것이 아닌가? 아니 사실 하늘 빛도 늘 푸르지는 않다. 그것은 잿빛으로 흐려지는가 하면 황사黃沙가 올 때에는 땅처럼 누레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검붉다’ 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모든 빛이 사라진 한밤중에 고개를 들어 천공天空을 바라보라. 하늘은 검다. 그러나 그 검정에는 끝없는 우주의 광막함으로 이어지는 깊이가 있다. 그것이 ‘검붉음(玄)’ 이며 ‘유현함’ 이며 바로 진정한 하늘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말했다. “이 두 가지, 즉 유有와 무無는 ‘같음’ 에서 나와 이름을 달리한다. 그 ‘같음’을 일러 현玄이라 한다. 유현하고 또 유현한 것, 이것이 모든 미묘함이 나오는 문이다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라고. 보아도 보이지 않고(이夷) 들어도 들리지 않고(희希)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미微) 저 도道의 아득한 실상實狀은 ‘긴 끈처럼 면면히 이어지지만 그무엇이라 이름할 수 없다繩繩不可名’ 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옛분들은 자연을 겉태로 보지 않고 그 마음으로 보았다. 특히 하늘은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하늘은 지극히 큰 것으로 온갖 생명과 도덕의 원천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양화법이 도입된 이래 푸른 하늘이 화폭에 그려지게 된 것은 회화 기법의 발전이 아니라 회화 정신의 쇠퇴였다. 진정한 하늘은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오히려 하늘의 가장 큰 특징은 ‘비어 있다는 점’ 에 있으니, 그저 화면에 하늘을 위한 여백을 남겨두는 행위야말로 진정 하늘을 잘 그리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옛 그림의 여백 사용은 자연의 묘리妙理를 파악해서 얻어낸 최상의 기법이요, 발상이었다. 왜냐하면 여백으로 드러나는 하늘과 물의 본질적 특성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그것의 외면 형상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과 물의 본질적인 속성은 그것이 가지는 무한한 공간적 확산성, 그리고 그 공간이 하늘을 나는 새와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등 모든 생명체에 부여하는 무한한 자유에 있다. 이 공간과 자유는 그림의 바탕을 그대로 이용하고 하등의 인공적 작위作爲를 가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면 땅은 어떠한가? 땅 또한 만물이 그에 의지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삶의 공간이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세한도〉에서처럼 땅도 몇 줄의 가는 선만으로 표현된다. 특히 겨울산수화에서 눈을 그릴 때는 흔히 ‘땅을 벌어서 눈을 삼는 借地爲雪’ 것이다. 눈을 그리는 방법엔 원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양화에서처럼 눈이 쌓인 부분에 직접 흰색을 바르는 방법(부분법敷粉法)이고, 다른 하나는 거꾸로 눈이 없는 다른 부분을 그려서 그림의 흰 바탕에 눈이 쌓인 것처럼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방법(유백법留白法)이다. 이 가운데 유백법을 격조 높은 기법으로 보았던 오랜 전통은 자연을 보는 옛 사람들의 관점을 분명히 말해준다.
텅 빈 하늘이 있은 후에야 휘황한 달이 아름답고, 아지랑이 서련 아득한 공간이 있어야만 그 앞에 뻗어난 한 줄기 댓가지가 풍류롭다. 보이는 형상은 비어진 여백 공간과 끊을 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 무는 유를 낳고 유는 무에 의지한다. 아니, 유는 드러난 것(현顯)이고 무는 감추어진 것(은隱)일 뿐이다. 그러므로 빈 공간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의 여백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히 크고 넓어서 그려낼 수 없는 그 무엇을 상징하고 있다. 음악에서도 극히 여린 소리와 긴 침묵의 순간에 숨죽이는 더 큰 감정의 떨림이 있고, 무용에서도 정중동靜中動으로 가만히 들어올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의 미세한 동작 하나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네모진 화폭 속에서 어느 한 부분도 다른 한 부분만큼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형상이야 있건 없건 화면에는 고르게 예술가의 혼이 떠돌고 있으며, 특히 여백 속에는 화가의 못 다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어딘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바림이 베풀어져 있다는 사실도 비로소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되고 거기에서 다시 옛 사람들의 여유롭고도 쏠쏠한 마음 씀씀이를 이해하게 된다. 흔히 ‘마음의 여백’이라는 말을 한다.

옛 그림에는 여백의 마음’이 있다.
2005. 8. 25. 17:58

실로 (失路)

작년에 산사에 놀러 갔다가 길을 잃고 깎아지른 벼랑으로 잘못 들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등나무를 더위 잡아 산도 물도 다한 곳에 이르니,
단지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옷도 흐트러진 채 이리저리 방황해도 더 나아갈 곳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구름 위로부터 종소리가 들려와 나를 이끄는
안내자가 되었다. 있는 힘을 다해 다시금 묏부리 하나를 올라가니
푸른 전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산에 들어 길 잃음을 유감으로 알지 말라. 여태껏 못 본 산을
수도 없이 볼 터이니”라고 한 것은 그래서 지은 시다.

잘못해서 나쁜 길로 들어가 온갖 괴로움을 다 겪은 뒤에야
바야흐로 바른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단 참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문과 서화도 또한 그러하다.

昨年遊山寺, 迷失路, 入絶壑. 披棘攀藤, 到山盡水窮處, 但有白雲起矣.
散衣彷徨. 無處進步. 忽有鍾聲來自雲上, 作我導師. 極力更上越一崗,
而碧殿出矣.

有詩云 : “莫恨入山迷失路, 好看無數未看山.”

故云. 誤入邪徑, 備歷艱險, 然後方知有正路.
非直參禪, 詩文書畵亦然.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2005. 8. 25. 17:53

이해 (利害)

개구리는 시내나 도랑에서 나는데 꼭 계단이나 뜰 사이에 숨는다.
닭들이 마구 뒤져 잡히기만 하면 죽는다.
나는 말한다. 왜 수풀 사이에 가만있지 아니 하고, 인가에 가까이 와서
재앙을 면치 못하는 것일까!
생각건대 사람 가까운 곳에는 땅이 기름지고, 땅이 기름지면 벌레가 많으니,
개구리는 벌레를 쫓아온 것이었다.
아! 이로움이 있으면 해가 뒤따른다는 말을 이에 있어 징험 할 수 있겠다.

蛙生溪瀆. 必藏於階庭之際. 群鷄恣索得便致命.
翁日 : 何不任在林藪之間, 輒來近人家, 而禍殃之不免哉 意者,
近人則土沃, 土沃則蟲繁, 蛙所以逐蟲至也. 噫 ! 有利則害隨,
於此可驗.

-이익(李瀷, 1681~1763), 「관물편觀物篇」
2005. 8. 23. 13:13

축구는 아름다워 (축구 칼럼리스트 서형욱 님)

아스날과 포츠머스의 경기는 애초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았다. FA컵 8강전이었고, 모처럼의 공중파 중계 였지만 결과가 충분히 예상되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강호 아스날이 홈팀 포츠머스를 꺾는 것은 경기 전부터 모두가 예견했던 결과였다.
그러나 골이 터지면 터질수록 경기는 매력적으로 변해갔다. 예상대로 득점포를 계속 작렬한 것은 원정팀 아스날 선수들이었고 점수차는 5:0까지 벌어졌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홈팀 포츠머스 선수들은 그렇게 많은 골을 내준 뒤에도 여전히 용감하고 또 여전히 의욕적이었다. 오히려 다섯 골이나 앞선 원정팀 아스날 선수들이 낯선 분위기에 당혹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이유는 역시 팬들이었다. 홈에서 “영국 최고의 팀”을 맞아 수없이 얻어터지는 와중에도, 골을 내주면 내줄수록 팬들의 목소리는 높아만 간다. 어찌 보면 수치스러울 수 있는 홈 경기 스코어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누구 하나 선수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노래, 쉴새 없는 함성 그리고 선수들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 맞춰 터져나오는 탄성에 이르기 까지, 어느새 경기의 스포트라이트는 그라운드 위를 벗어나 객석으로 옮겨지고 있다. 저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포츠머스 선수들은 순식간에 멈출 줄 모르는 전사들로 변신하고 있었다. 승부는 이미 갈려 이미 몸을 날릴 필요 없는, 아니 어쩌면 다음 경기를 위해 체력을 비축해둬야 할 그들이었지만 한 골만 터뜨리면 월드컵 본선에 오르기라도 하는 양 모든 선수들의 동작은 “최선”이라는 단어를 절로 떠오르게 만든다.
마침내 후반 종료 직전에 터진 포츠머스의 첫 골, 이제 고작 첫 골을 넣어 1:5로 승부에는 아무 변화가 없거늘, 모든 관중들은 기립 박수로 선수들을 치하하고 있다. 선수들 역시 이 한 골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 팬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박수를 돌려준다. 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당장의 승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선수들, 분명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들에게 승리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수단일 뿐이다. 첫 번째 수단이 어렵다면 최선을 다해 팬들의 작은 바람이라도 이뤄주는 것이 또 다른 보답일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대부분의 관중들은 자리를 뜨지않는다. 최선을 다한 그들의 선수가 모두 그라운드를 떠날 때까지 박수와 환호로 그 자리를 지켜고 서있다. 누가 감히 저들에게 충성하지 않으랴.
승자인 아스날 선수들도 경기장을 떠나는 내내 홈팬들의 놀라운 응원에 경의를 표한다. 포츠머스 팬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앙리와 비에이라, 카누의 모습이 차례로 화면에 잡힌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잡아줄 줄 아는 카메라맨에게도 경의를!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앙리는 말한다.
3:0, 4:0, 5:0…. 스코어는 계속 벌어지지만 팬들의 노랫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이토록 놀라운 광경을 어디서 또 볼 수 있겠는가. 오늘의 영웅은 (두 골을 터뜨린) 내가 아니라 저들이다.”
결코 명문이라 부를 수 없는 프리미어리그 새내기팀 포츠머스지만 오랜 시간 지역민들과 함께 해온 그들의 역사는 축구가 아름다운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셜록 홈즈를 창조해낸 코난 도일과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아카데미상을 탄 안소니 밍겔라와 같은 대중 예술가들이 이 팀에 혼을 빼앗긴 것도 이처럼 축구의 참 맛을 아는 팬들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문득 축구팀 없는 도시에 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진다. 이 아름다운 축구의 한 풍경을 직접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쓸쓸한 일이므로.
(2004년 3월)
2005. 8. 19. 16:55

별로 떠난 왕자 <앙뜨완 드 생텍쥐페리> 이윤기 님

1920년, 스트라스부르 제2전투기 연대 활주로. 교관이 갓 뽑혀 들어온 조종사 후보생들을 모아놓고 낡은 연습기의 계기반을 가리키며 명칭과 기능을 일일이 설명한다. 그리고는 후보생들을 이끌고 강의실로 들어간다. 후보생 하나가 강의실로 몰려 들어가는 후보생 대열에서 가만히 이탈하여 연습기를 맴돈다. 그는 강의실 쪽을 힐끔거리고 있다가 가만히 조종석으로 숨어 들어 조종간을 잡는다. 연습기는 활주로를 미끄러지다 둥실 하늘로 떠오른다. 강의실에서 교관들과 후보생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연습기를 올려다본다. 교관들은 욕지거리를 퍼붓고 후보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휘파람을 불어댄다.
그는 연습기를 이륙 시키고 싶었을 뿐, 착륙 시키는 법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동안 하늘을 날던 그는, 연습기를 반쯤 부숴 먹은 다음에야 활주로에다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연착과는 거리가 먼 무모한 동체 착륙이다. 헌병 손에 영창으로 끌려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면서 교관 중 하나가 중얼거린다.
“천상하늘에서 죽을 녀석이야”
앞뒤 돌아보지 않고 연습기를 하늘로 몰고 올라간 후보생이 바로 생텍쥐페리다. 그가 조종사 면허증을 딴 것은 그로부터 2년 뒤, 영창살이를 끝내고 카사블랑카 파견 부대에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아름답게 슬픈 이야기 『어린 왕자』는, 불시착과 추락사고로 점철되는 항공기 조종사의 척박한 삶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다.
『어린 왕자』는 그의 이름을 별의 높이까지 드높인, ‘한 어른의 어린시절’에 바친 이야기다.
1900년은 니체의 한살이가 닫힌 해, 생텍스(생텍쥐페리의 애칭)의 한살이가 열린 해다. 니체를 존경하는 내성적인 청년 생텍스가 1919년 해군사관학교를 지망한 것은 삶터로서 영원으로 열린 공간을 선택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바다는 끝이 없는 곳, 영원으로 열려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는 해군사관학교 입학에 실패한다. 불어 시험 문제,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의 인상에 대해서 쓰라’가 실패의 원인이 된다.
불어 시험 교관이 답안지에서 발견한 것은 생텍스가 쓴 단 하나의 문장.
“나는 전쟁 터에 나가 본 일이 없으므로 병사의 인상에 대해 아는 척하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생텍스는 인생살이에서 의미가 없는 것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해군사관학교는 의미가 없는 것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이 청년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다. 청년은 해군사관학교의 배 대신에 교회에 심취한다. 배를 타면, 바다가 마련해 놓은 무한공간에 취하는 이 청년에게 성당은 또 하나의 거대한 돌배(石船)와 같은 존재다. 그는, 적당한 적요(寂寥)가 깃들이면 돌배는 바다보다 더 넓은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그에게 비행기는 또 하나의 배, 하늘을 날아다니는 배다. 그가 전투기 연대에 들어간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항공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했던 것일까?

자연주의자인 미국의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생텍스를 견주어 보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이 둘은, 시대는 다르지만, 끊임없이 인간을 관찰하면서 44년이라는 짧은 세월을 이 땅에서 살다 떠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는 인간을 관찰하는 지점에서 극단을 이룬다. 전자는 무위 자연의 ‘무위’ 라는 자리에 앉은 채, 자연을 무찌르는 인간을 관찰하고, 후자는 기계 문명의 총화라고 해도 좋을 항공기 조종사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생존의 본질을 상실해 가는 인간을 관찰한다. 전자는 인간이 문명을 떠나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후자는 인간이 문명 속에서 어떤 인간 관계를 유지하면서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관찰한다. 전자에게 자연은 ‘오래 된 문제로부터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 자리’ 지만 후자에게 항공기 조종석은, ‘오래 된 문제로부터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 자리가 아니라, 오래 된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관찰하게 한 자리’ 다. 생텍스의 관찰 기록이 소설 『야간 비행』,『인간의 대지』, 『성채』 같은 명편들이다.
작가 자신이 삽화까지 곁들인,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의 기둥 줄거리는 매우 간요(簡要)하다. 사막에 불시착한 한 항공기 조종사가 이상한 별에서 온 이상한 왕자를 만났다 떠나 보내기까지를 기록한 이야기다. 그러나 메시지가 지니는 해석의 여지는 그지없이 풍부하다. 두 시간이면 독파할 수 있는 『어린 왕자』가, 독자에게 별 하나 껴안는 듯한, 벅차면서도 낯선 감동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어린 왕자』는, 작가 자신이 여섯 살 때 그렸다는 그림 얘기로 시작된다.
작가는 어린 시절, 맹수를 삼킨다는 보아 구렁이 이야기를 읽는다. 너무 큰 맹수를 삼킨 나머지 움직일 수 없어서 반 년 동안이나 잠을 자면서 삼킨 것을 소화한다는 무서운 구렁이 이야기다. 어린 생텍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를 상상하고는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어른들에게 보여 주면서 무섭지 않느냐고 묻는다. 속이 안 보이는 보아 구렁이 그림이다. 어른들은 모자를 왜 무서워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어린 생텍스는 보아 구렁이의 뱃속에 들어 있는 코끼리를 그려 보여 준다. 말하자면 속이 보이는 보아 구렁이 그림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제서야 어른들은 그게 모자 그림이 아니라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라는 것을 납득한다. 어린 생텍스는, 어른들은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납득하지 못하는 이상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생텍스에게, 속이 안 보이는 보아 구렁이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지리나 역사, 문법과 산수 같은 것에 관심을 가져 보라고 충고한다. 생텍스는 그 충고에 따라 겨우 여섯 살때 화가 노릇을 포기한다.
그러나 그는 어른이 된 다음에도, 코끼리를 삼킨, 그러나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 구렁이 그림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묻는다. 이거, 뭘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모자를 그린 것 같군요.
그가 사막에서 만난 이상한 왕자는 다르다. 생텍스가, 속이 안 보이는 보아 구렁이 그림을 보여 주면서 무엇을 그린 것 같으냐고 묻자 왕자는 반문한다.
“아니,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 아니에요?”
생텍스의 견해에 따르면 어린 아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어른들 문화에 적응하는 몸 만들기 과정에서 이 앎을 상실함으로써 실낙원에 합류한다. 복락원(復樂園)에 대한 시도가 담긴 생텍스의 『어린 왕자』는, 아이의 마음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천국에 이를 수 없다는 성경 구절을 상기시킨다.

1926년 항공사에 입사한 이래 생텍스는 18년 동안 항공기 조종사와 작가라는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는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변덕스러운 바람’ 과 ‘시점에 따라 달라 보이는 믿을 수 없는 별들’ 과 ‘온 존재를 삼키는 듯한 하늘의 어둠’에 뛰어들고, 이러한 행동을 통해 이 ‘믿을 수 없는 것들’로부터 아름다움의 총화를 읽어 내고 그것을 쓴다. 그는, 소총 3백 자루를 가진 사막의 도적들로부터 토끼처럼 집중 사격을 받은 적도 있고, 사이공에서 파리로 귀환하는 길에 사하라사막에 불시착, 식수 한 방울 없이 닷새 동안이나 사막을 헤매다 베두인 낙타몰이 덕분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적도 있다. 『어린 왕자』의 배경이 되고 있는 듯한 이 사막의 불시착 상황은 그의 소설 『인간의 대지』에 손에 잡힐 듯이 묘사되어 있다.

1943년, 지구상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시인(詩人) 『어린 왕자』를 창조한 생텍스는 다음 해인 1944년 7월 31일, 이 지구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조종사로 출격한다. 6시간분의 연료를 넣고 떠난 그의 실종 사실이 확인된 것은 출격한 지 여덟 시간이 지난 14시 30분.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실종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있다. 천상 하늘에서 죽을 녀석이야---- 교관의 예언은 이로써 이루어진다. 그의 글 한 줄이 가슴을 친다.

죽음을 보상으로 여기라. 포구에 묶여 있는 배를 난바다로 풀어주는 것, 그것이 죽음 아닌가?
2005. 8. 18. 13:04

영혼을 위한 음식 (유시화 님)

"한가지가 지루하면 모든 것이 지루한 법!”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데, 카운터에 앉아 있던 주인 남자가 영어로 말했다. 때가 지나선지 식당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내가 창가 자리로 가서 앉자, 주인 남자가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 종업원을 무척 부려먹게 생긴, 끝이 둥글게 꼬부라진 콧수염을 한 풍채 좋은 남자였다. 그는 테이블에 앉은 파리 한 마리를 메뉴판으로 후려쳐서 아득한 뇌사상태에 빠뜨린 뒤,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 펼쳐 놓았다. |
식당은 손바닥만한데, 메뉴에는 북인도 음식이든 남인도 음식이든 없는 게 없었다. 몇 년 동안 인도 대륙을 헤매 다닌 끝에 모처럼 제대로 된 싸구려 식당을 발견한 것이다.
뭘 먹을까 입맛을 다시며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주인 남자가 또 말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식욕을 잃는 법!”
그리고 나서 그는 말했다.
”사람이 메뉴를 먹을 순 없는 일이오. 아무리 메뉴를 들여다본다 해도 배가 부를 리 없소. 세상의 책이 다 그런 것처럼!”
맞는 말이었다. 메뉴가 아무리 다양해도 그것으로 허기를 채울 순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배가 고파 허리가 꼬부라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우선 버터 난(납작하게 해서 진흙 화덕에 구운 밀가루 빵) 2인분과 그것을 찍어 먹을 달(녹두를 갈아서 만든 일종의 수프) 한 접시, 그리고 알루 본다(감자로 속을 채운 고로케) 네 개를 주문했다. 양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으면 싸 갖고 가서 저녁때 먹으면 될 일이었다. 나는 또 갈증을 식힐 겸 시원한 망고 라시(물로 희석 시킨 저 지방 요구르트에 망고를 갈아 넣은 것) 한 잔을 먼저 부탁했다.
내가 어렵사리 주문을 마쳤는데도, 식당 주인은 받아 적을 생각은 하지 않고 콧수염만 잡아당기며 서 있었다. 그러더니 말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이 전부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오. 어떤 건 그림의 떡이란 걸 알아야만 하오.”
내가 영문을 몰라 쳐다보자, 그는 설명했다.
“이 메뉴판에 적힌 것들도 마찬가지요. 보다시피 오늘은 종업원들이 결혼식에 갔기 때문에 식당엔 나밖에 없소. 무슨 수로 그 많은 걸 나 혼자서 다 만들겠소.”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진작에 설명할 일이지, 메뉴판까지 갖다 주고서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너무 허기가 져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다.
나는 힘없이 물었다.
“그럼 어떤 게 그림의 떡이고, 어떤 게 진짜 떡이죠?”
그가 말했다.
“그걸 구분하는 것이 바로 삶의 지혜 아니겠소? 어리석은 사람들은 대개 그림의 떡인 줄 모르고 달려들다가 인생을 망치곤 하거든.”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점심 한 끼 먹으러 왔다가, 잘난 체하는 식당 주인의 설교로 허기를 채우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카운터 위의 벽에는 코끼리 신상과 함께 그의 영적 스승들로 보이는 성자들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내가 허무한 표정으로 앉아 있자. 남자는 주방으로 들어가 뚝딱거리며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식당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웬지 독특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명상하는 셈치고 앉아 있었다.
그날 나는 그 이상한 식당 주인으로부터 희멀건 라시 한 잔을 얻어 마셨고, 그 다음엔 전날 만든 게 틀림없는 사모사(인도 만두) 몇 개로 허기를 채운 뒤, 별 볼 일 없는 음식을 하나 더 얻어 먹었다. 한 가지가 나오면 다음 음식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려 금방 배가 고왔다. 싸 갖고 가서 나중에 먹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말끝마다 명언을 늘어놓기를 좋아하는 그 식당 주인은 내가 음식값 계산을 하고 있자, 또 한 마디 했다.
“돈 계산을 하기보다는, 더 많은 노래를 부를 것!”
그는 마치 머리에 두른 터번 속 어딘가에 힌두 성자가 쓴 두툼한 명언 사전을 숨겨 갖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내가 식당 문을 나서며 또 봅시다!” 하고 인사를 하자, 그가 얼른 되받아 쳤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신이 미소 짓고 있는 게 보이지 않소?
우리가 내일 보게 될지 다음 생에 보게 될지, 어떻게 알겠소?”
별로 먹은 것도 없이 명언으로 헛배가 부른 하루였다.
이튿날 아침, 나는 다음 생에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식당 주인의 지적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 식당으로 다시 갔다.
어제와는 달리 식당이 활기에 차 있었다. 종업원들도 분주히 오가고, 외국인 여행자 몇몇이 둘러앉아 자기들이 여행한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여성은 티벳에도 가고, 네팔과 스리랑카도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네팔에 일주일밖에 있지 않았는데도 벌써 네팔 전문가가 다 되어 있었다.
쉬지 않고 자신들의 경험담을 주고받는 여행자들 사이로. 어제의 그 식당 주인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나는 아침부터 눈앞에서 잔인한 살생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얼른 테이블에 앉은 파리들을 쫓아냈다.
그가 메뉴판을 내려놓으며 건너편에 앉은 여행자들더러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인도에서는 인도만 생각하고, 네팔에선 네팔만 생각할 것!”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여행자들은 서로 만나면 자신이 여행한 다른 장소를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인도에선 네팔 이야기를 하고, 네팔에선 인도 이야기를, 뭄바이에선 캘커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살면서도 언제나 어제와 내일을 이야기한다.
명언을 좋아하는 식당 주인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그가 말했다.
“진리는 단순한 것이오. 마살라 도사(속에 야채를 다져 넣은 인도식 팬케이크)를 먹을 때는 마살라 도사만 생각하고, 탄두리 치킨(닭고기에 향료와 요구르트 등을 발라 진흙 화덕에 구운 것)을 생각하지 말 것!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행복할 것이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침으로 마살라 도사 한 접시를 주문했고, 마살라 도사를 먹으면서 오로지 마살라 도사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식당 주인 라자 고팔란 씨와 함께 그날 오전 나는 장을 보러 갔다. 함께 갔다기보다 그가 시장 바구니를 들고 나서길래 나도 엉겁결에 따라간 것뿐이었다.
신선한 생강, 검은 후추, 감자, 갖가지 향신료 등을 사 갖고 돌아오는데, 한 신사가 서류가방으로 우리를 밀치며 바쁘게 지나 갔다.
고팔란 씨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는 허둥대며 걸어가는 신사 양반의 뒤꼭지에 대고 직격탄을 날렸다.
“할 일을 다 마치면 죽을 것이라는 점성술사의 예언 때문에 끝없이 일을 하는 사람이 저기 가고 있군!”
그의 명언은 어느덧 한 편의 우화를 읽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달리기를 멈추면 죽을 것이라는 점쟁이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처럼, 우리는 쉬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장을 보고 돌아오니 벌써 점심때였다. 나는 또다시 치밀하게 메뉴판을 검색하며 라자 고팔란 씨의 식당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메뉴판 한쪽에 베지터블 브리아니와 베지터블 플라오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둘 다 밥에 야채를 섞은 음식이라고 영어로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내가 라자 고팔란 씨에게 물었다.
“베지터블 브리아니는 뭐고, 베지터블 플라오는 뭐죠?”
손바닥을 뒤집으며 라자 고팔란 씨가 말했다.
“약간은 같고, 약간은 다르오.”
애매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내가 재차 물었다.
“그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죠?:
그러자 고팔란 씨가 메뉴판을 회수하며 말했다.
“둘 다 먹어 보시오. 그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알게 될 테니까. 지식은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오.”
그런 다음 그는 내가 말릴 사이도 없이 주방을 향해 외쳤다.
“여기 베지터블 브리아니와 베지터블 플라오 1인분씩!”
결국 나는 본의 아니게 점심을 두 그릇씩이나 먹어야 했다.
직접 먹어보니 두 음식의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베지터블 브리아니는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밥에 야채와 말린 야자, 해바라기 씨, 땅콩과 아몬드 등을 넣은 일종의 볶음밥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베지터블 플라오는 그것과 약간은 같고, 약간은 달랐다.
그 맛의 정확한 차이를 알고 싶은 사람은 인도에 가서 직접 먹어 볼 일이다. 라자 고팔란 씨의 예리한 지적대로, 삶의 중요한 것들은 직접 경험해야만 자신의 것이 되는 법이니까.
어제 내가 앉았던 창가자리에서는 한서양인 친구가 양고기 요리를 시켜 먹으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자기가 설명을 들은 것과는 맛이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계산대 쪽에서 칠리 소스와도 같은 명언이 배달되었다.
“음식과 메뉴판이 서로 다를 때는 메뉴판을 믿지 말고 음식을 믿을 것!”
과연 그다운 지적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이 기대한 것과 실제의 것이 다르다고 불평을 하는가. 하지만 그 서양인은 자신이 주문한 옴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해서 불만에 찬 얼굴이었다. 자극적인 인도 향료가 쉽게 입맛에 맞을 리 없었다. 짜고 맵고 쓰디쓴 삶의 여러 양념들처럼.
그날 오후, 나는 근처의 티벳 하우스를 방문한 뒤 어김없이 라자 고팔란씨의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인도음식이 가진 매력도 매력이지만, 한 접시에 명언을 대여섯 개쯤 없어 내오는 독특한 식당주인이 자꾸만 보고 싶어졌다.
내가 선택한 저녁 메뉴는 소박한 인도음식 탈리였다. 탈리는 값이 싸고 맛있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스테인레스로 만든 둥근 식판에 제공되는데, 밥과 수프, 반찬 등이 칸칸이 담겨 있다.
라자 고팔란 씨의 주방에서 내오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탈리’는 그의 지혜로운 명언들 못지 않게 신선하고 맛이 있었다. 다만 수프에 소금이 너무 들어가 약간 싼 것이 흠이었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기다렸다는 듯 라자 고팔란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오!”
그의 명언은 오래 씹을수록 향이 나는 소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는 인도 음식을 먹고 나면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 풀씨처럼 생긴 작은 열매로, 그것을 씹으면 음식 냄새가 제거되고 입 안에 향기가 더해진다. 라자 고팔란 씨의 명언이 바로 그 소프와 같았다.
책이 아니라 삶에서 얻은 지혜를 그는 적절히 영혼의 양식에 버무릴 줄 알았다. 온갖 향신료를 빻아 음식의 향을 내듯, 그는 몇 개의 톡 쏘는 명언으로 영혼을 향기롭게 하는 재주를 지녔다. 인도 음식이 다른 나라 음식보다 향이 강한 것처럼, 라자 고팔란 씨 역시 인도의 식당 주인답게 독특하고 특별한 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와의 만남으로 나는 인도의 모든 식당 주인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그가 지닌 마술과도 같은 힘이었다. 인도 대륙에 널려 있는 지저분하고 먹을 것 없는 수 많은 식당들이 라자 고팔란 씨 덕분에 마치 우화책 속의 식당들처럼 내 안에 신비롭게 자리잡았다.
그날 밤 나는 야간 열차를 타고 멀리 오리싸 주로 떠나야 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식당을 나설 때, 라자 고팔란 씨는 인도 만두 사모사 몇 개와 함께, 마지막으로 고독한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명언 하나를 선물했다.

“어디로 가든 당신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2005. 8. 17. 12:29

무소유 (범정스님)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올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올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 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 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 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 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 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스인가 하는 비료를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그 애들올 위해 실내 온도를 내리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초를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캔 어느날 봉선사로 운허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서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 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 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 (승가 僧家의 유행기 遊行期)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을 못했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益)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 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 다. 날아갈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 올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 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방향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l971
2005. 8. 8. 13:59

부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황금 연못 이나 드라이빙 미스데이지를다시 보고 싶어진다
<어느 책에선가 보고 옮겨두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안타깝다>


기약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난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쭉 펴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 체조 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 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 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할 거야.
이때 나직이 모차르트를 틀어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넛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비벼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라지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백화점에 가서
당신의 마른 가슴 데울 스웨터를 살 거야.
잿빛 모자 두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볼 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 베이지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 빛 실크스카프 매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 갈까?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넛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한번 찍을까.
곱게 액자 만들어 창가에 걸어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나 늙으면 그렇게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2005. 8. 8. 11:46

달라이 라마의 "용서" 에서

용사와 자비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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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 용서는 그들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는 상관없이, 세상 모든 존재는 우리 자신이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그러면 그들에 대한 자비심을 키우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나는 행복해지는 것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적 여건이나 교육, 또는 사상과는 무관하다. 우리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그저 만족감을 원할 뿐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행복을 가져와 줄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용서와 자비다.

고통을 견뎌 낼 수 있는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를 상처 입힌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는 용서를 베풀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스승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내면의 힘을 시험한다.
용서와 인내심은 우리가 절망하지 않도록 지켜 주는 힘이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굳이 서로를 소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나와 같은 단 하나의 사람일 뿐이다. 움직이고, 미소 짓는 눈과 입을 가진 존재를 소개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적은 없다. 우리는 피부색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존재다. 살아 있는 어떤 존재라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를 미워하는 이들에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사랑이고 자비이다. 누가 우리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는가? 다름 아닌 우리의 반대편에 서서 우리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스승들이다.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분노와 미움,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해도, 삶에서 그는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을 상대로 싸움과 살인을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는 모두 일시적이며, 결국 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죽는가, 병으로 사망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어쨌든 우리가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결국 사라질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정한 승리자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이겨낸 사람이다.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진정한 자비심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줄 아는 마음이다.
그의 고통에 책임을 느끼고, 그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마음을 기울일수록 우리 자신의 삶은 더욱 환해진다.
타인을 향해 따뜻하고 친밀한 감정을 키우면 자연히 자신의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것은 행복한 삶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나는 한 명의 인간이자 평범한 수도승으로서 이야기할 뿐이다.
내가 하는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면, 그대로 한번 실천해 보기를 바란다.

- 달라이 라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