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서 소근소근/비처럼 음악처럼'에 해당되는 글 121건

  1. 2008.06.05 식물의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2. 2008.06.03 서울에서 벗어나기
  3. 2008.06.02 가는 세월을 느끼기 1
  4. 2007.12.21 한해를 돌아보며
  5. 2007.12.21 할아버지가 되고나니...
  6. 2007.11.12 튤립 나무를 바라보며
  7. 2007.11.06 지는 낙엽을 지켜보며
  8. 2007.10.08 남궁 선생님의 사진전을 보고...
  9. 2007.04.10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10. 2007.03.27 우연 또는 필연 - 2
2008. 6. 5. 07:29

식물의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며칠 만에 다시 가본 텃밭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심은 고구마, 옥수수, 상추, 방울 토마토,

가지, 고추 모종들이 대부분 싱싱하기 살아있었다.

 

갈아 엎어 놓은 밭 고랑에 검은 비닐로 멀칭을 한 다음, 대충 꽃아 놓듯이 심고 나서

고양이 세수하듯 물을 조금씩 밖에 주지 못했고, 그간 날씨가 더워 모두 시들었으면

어쩌나 했는데, 어제 보니 대부분 싱싱한 모습이었다.

고구마는 불과 며칠 새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고, 어느새 이름 모를 나비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고 있었다.

 

지난 4월초에 심은 매실나무 10주중 8주는 싱싱하게 잎이 돋아나 땅 기운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심으면서 보니 뿌리가 너무 허술하기도 했기에 돌팔이가
제대로 돌볼 시간도 없이
공연히 나무만 죽이는 꼴이 아닌가 했던 걱정을 잠재웠다.

 

농사라야 시늉이나 내면서 시작을 한 셈이고, 작은 밭에서 운 좋게 조금이라도 수확을

하게 된다면 식구들끼리 나눠먹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으니, 욕심을 낼 필요도 없다.

최악의 상황으로 전혀 거두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섭섭하다는 것 외에는 문제 될 것이

없으니 전혀 부담 없고, 그저 흙 내음이나 맡으며 잠시 숨 고르기 하듯 도시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직은 농약을 뿌리지 않아서인지 주변 논두렁에는 무당개구리들이 많이 눈에 띄고,

산에서는 여름 철새인 뻐꾸기소리가 들리고 있다.

 

머지 않아 주변 환경은 동네에 농사짓는 이들이 뿌리는 제초제 같은 농약으로
모두 망가져 버리겠지만, 작은 새소리,
개울 물소리라도 간간히 들을 수 만 있다면,
나중에 마음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몰라도,
지금 나의 바람은 그것이 전부다.

 

2008. 6. 3. 13:25

서울에서 벗어나기

군대 생활 2, 회사 근무 중 해외생활 대략 1년여를 제외하더라도 내가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세월은 50년이 넘는다.
 

지난해 홍천에 도피(?)처를 장만하고, 올해에는 봄부터 집 짓기를 착수, 오랫동안 별러온 서울 탈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그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직장생활만을 30여 년 해오다 보니 개발행위 허가, 분할 측량, 건축허가, 우물 파기, 전기 끌기, 정화조 설치하기 등등, 전혀 생소한 일들이 줄지어 있고, 매 단계별로 소요되는 자금도 수월치 않다.

개발행위허가라는 단어가 이제야 겨우 익숙해지려 하고 있는데, 그 동안 토목 설계 사무소의 소장과 나눈 몇번의 대화에는 지금껏 들어보지도 못했던 용어가 줄줄이 이어졌고, 그 절차 역시 합법으로 진행하려니 무엇 하나 쉽게 되는 것이 없었다.


당분간 컨테이너 정도나 놓고 주말에나 드나들면 되지 않을까 하다가, 최소한 이동식 주택이라도 갖다 놓으려 하니 합법으로 하려는 사람이 바보처럼 취급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모든 복잡한 절차가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적당히 비비며, 속된말로 개기며 살면 되지 하는 사람들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 졌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우물도 파고 전기도 끌어야 하고, 주문한 목조 주택이 들어오고 기초공사 후 조립 마무리까지 하려면 두 달 가까이 더 걸려야 한다. 이렇게 금전적인 부담이 크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주말만이라도 맑은 공기를 마시고, 개울물 소리, 새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고 있다.


서울 촌놈이 강원도 촌사람으로 신분전환(?)하기란 아직 시골생활, 한 귀퉁이 텃밭 일구기에도 배워야 할 것이 많고,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하지만 지난주 집터에서 들었던 뻐꾸기 소리가 아직 귓가에 쟁쟁하고, 골짜기에 피고 있는 매발톱 꽃, 밭에 심은 모종이 싱싱하게 자리 잡은 모습이 눈에 선하니, 철없이 무지개 꿈을 꾸기란 마냥 즐겁기만 하다.
2008. 6. 2. 12:35

가는 세월을 느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이가 들기 때문일까?

왜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점점 무심해지고,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

어느새 손자 녀석이 세상을 나온지 5개월이 지났다. 녀석이 워낙 순하다 보니 아직은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어쩐지 짐작이 되지 않고 있고, 아마 저를 낳아준 부모의 심성이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그 녀석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갑갑해 보이기만 하고, 이런 세상을 녀석에게 넘겨주고 마는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이나, 분쟁소식을 접하면, 모두가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이 생활환경을 모두 망치고 있고, 그 배경에는 일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정치인들이 숨어있고 그들의 농간에 죄 없는 서민들만 희생을 당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대 운하 사업을 펼치면 어쩌구 하면서 새로운 재앙을 창조하려는 지도자, 영어 교육은 어째야 한다.. 하며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을 새롭게 설계한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교육정책 등등, 모두가 손자 녀석 역시 그 희생자 중에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마냥 답답하기만 하다. 누가 저 티없는 순수함을 더럽힐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어른들은 자기 아이의 재주가 늘고 무분별한 지식이나 관념이 쌓여가는 모습을 즐기려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욕심을 더욱 키워가며 아이가 부처에서 중생으로 망가져가는 일정을 당기려고 갖가지 고약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다만, 지식과 지혜를 구분할 줄 아는 아이, 세파에 휩쓸려 힘겨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바른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면 하는 마음만이 앞선다
2007. 12. 21. 13:15

한해를 돌아보며

어느새 한해를 얼마남지 않은 시기가 되었다.
해가 바뀐다고 내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해를
넘길 때마다 한번쯤은 지난 한해를 돌아보게 된다.

2007년에 내게는 여러 이벤트가 있었다.
30년 꾸준히 다녔던 회사에서 정년퇴직도 하고, 그간 모아둔 사진으로
전시회도 했고, 별렀던 미국 여행도 보름이나 하고, 결혼 30주년도 맞았고,
할아버지도 되었다.

어제 부서 후배들과 각자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하면서 몇가지 우연을 찾을 수 있었다.
몇몇 기억할 만한 이벤트를 들춰 보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30년이라는
숫자와 이어져 있었다.

- 외곬인생을 살아 입사 30년 만에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 사진을 찍기 시작한지 30년 정도 되는 해에 사진전시회를 가질 수 있었다.

- 결혼 30년 만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 중학교 3학년때부터 라디오를 만든다고 인두를 들고 납땜을 시작한지
   30년 정도 지난  10년 전쯤에 다시 진공관 오디오를 만들게 되었다.

- 결혼한지 30년 만에 서울을 떠나 시골살이를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땅을
   갖게 되었다.


이제와 돌아보니 직장생활이던 가정을 꾸리는 일이던 길게, 멀리 봐야함을
느끼게 되었음을 예를 들며 본인의 세상살이에 목표를 너무 조급히 이루려
하지 말고 우선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갈 것을 후배들에게 권했다.

너무도 빨리 변하는 세상이라 내 삶의 방향도 그 속도에 맞춰 가며 궤도를
수정하면서 살아야 하겠지만, 정도를 찾아가며 자신의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지혜 찾기와 느리게, 불안해 하지 않으며 여유찾기를 새해에도 이어 가고
싶다.
2007. 12. 21. 13:09

할아버지가 되고나니...

이번주 월요일 낮에 예정일을 앞당겨 세상에 나온 녀석은 나를 할아버지로, 온 가족 모두를 한 단계씩 승격(?)시켰다.
첫 출산에는 예정일을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녀석은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었는지, 엄마에게 오랜 시간 진통으로 고생 시키더니 일찍 세상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나는 요즘 느리게, 천천히를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녀석은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내 잔소리를 듣게 된 셈이다.
주변에서는 축하한다고, 또는 할아버지가 된 것을 축하해야하는 거냐고 하면서도 부럽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아직 실감도 나지 않고, 얼떨떨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큰 녀석이 태어 났을 때에도 지금과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나 하고 기억을 되살려 본다.

예전에 회사 후배들과 술 좌석에서 나는 내 아이들이 내가 살아온 세상보다는 좀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원하기에 회사생활이나 가정을 이끄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던 생각이 난다. 그러려면 더 열심히 실력을 쌓고, 외국의 동종사를 앞지르는 회사를 만들어야 하고, 여기 저기서 한 걸음씩 나아가면 결국 좀더 나은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소박하나 허황될지도 모르는 소망을 이야기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돌아보면 지금 회사는 우여곡절 끝에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규모로 성장을 했고, 나라도 많이 발전을 한 것으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정치판은 부끄럽기 이를데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있고, 부정과 부패는 더욱 고차원의 수준으로 심화되고 있다. 학교 교육은 전보다 더욱 악화되고 있고, 교육정책은 더욱 한심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
물론 나 하나 잘못으로 지금같은 세상을 녀석에게 넘겨주게 된 것은 아니겠지만, 생활 환경부터 어느 하나 예전에 비해 좋아진 것은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부모님세대의 생각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한다.

우선은 건강한 아이로 커 나가면서, 험난 하기만한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조금씩 쌓아 가며 건전한 생각을 지닌 재목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2007. 11. 12. 21:57

튤립 나무를 바라보며

법정 스님께서 “텅빈 충만”에 도예가 윤광조 님의 말을 인용하며 나무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적어두신 내용이 있어 공감을 하며 읽은 적이있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 사전 검사를 하러 처음 들렀던 날, 거실 창 너머 숭실대학 테니스 코트 위로 커다란 나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는 겨울이라서 잎이 진 상태였기에 그냥 큰 나무가 서 있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봄이 되어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그 크고 의젓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마다 아내는 베란다 밖을 구경하며 재미를 느끼기 시작 했는데, 거실 소파에 앉아서 봄이  나면서 나무의 자태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며 즐거워했다.
한여름 내내 푸르름을 자랑하다가. 가을이 깊어져 잎을 모두 떨구게 되어도 워낙 거목이어서인지 그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노란 단풍이 들고 잎이 지기 시작했는데, 오늘 자세히 살펴 보니 어른 키 열 길도 넘어 보이니 2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인다.
언제가 초등학교에서 큰 나무가 태풍에 넘어가 학생이 다친 이후 학교마다 큰 나무를 모두 베어낸 적이 있었는데, 이사온 뒤 삼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더 큰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된다.
나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이유가 없을텐데, 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잘려나갈 것만 같으니 말이다.
내가 다니던 효창동의 금양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몇 아름들이 미류나무도 언젠가 가보니 밑동에서 아예 잘려있었다.

길가의 가로수가 전기줄에 닿는다고 마구 가지 치기를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죄 없는 나무를 해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잡초의 기준이 무엇일까? 인간이 필요해서 심은 곡식이나 과일나무가 크는 것을 방해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멀쩡한 풀이 잡초가 되는 것이다.

잠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보면 잡초는 제거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잡초도 소나 양 같은 초식 동물의 먹이가 되고, 때에 따라서는 약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아전인수 격으로 제 멋대로 해석, 스스로를 변명하며 정당성을 부르짖는 정치인들과 인간의삶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산을 허물고 나무를 마구잡이로 베어내는 행위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비교하면 다를 바가 있을까?

언제까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머물게 될지는 몰라도 내가 살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인간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수십년 이상 한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나무가 허무하게 잘려나가지나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07. 11. 6. 18:04

지는 낙엽을 지켜보며

갑자기 추워진 가을 날씨로 나뭇잎 단풍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지나게 되는 예술의 전당 앞 도로에 있는 비슷한 크기의 느티나무 가로수도 며칠사이에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 빛을 뽐내고 있다.
성질 급한 나무는 벌써 거의 잎을 다 떨구었다.
그 주변의 나무가 크기도 비슷하고 심은 시기도 비슷한 걸 보면 아마 같은 나무의 아들, 손자 일지도 모르는데, 겨울이 오면 결국 잎을 모두 떨구게 되겠지만 어떤 나무는 아직 푸르름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있는 걸 보면 사람의 삶도 별로 다를 바 없다는 하는 생각이 든다.
60년을 살던 80년을 넘겨 살던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이어 가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아 본들 시기만 조금 다를 뿐 낙엽지듯 결국엔 마감을 해야 하니 말이다.
같은 묘목장에서 자랐더라도 심겨지는 위치에 따라 살아야 할 삶이 정해지는 나무는 "Let it be"를 할 수 밖에 없고,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넓게 보면 다를 바가 있을까?

교육열이 과하다느니 지나치게 사교육비를 쓰고 있다느니 하면서도 누구나 능력이 되는 한 전력을 투구해서 자식들을 가르치려 한다. 무엇이 될 싹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걸음마를 뗄 정도가 되면 남보다 뭐라도 일찍, 많이 가르치려고 목숨 걸고 눈에 불을 켜는 것이 우리 나라 교육 현실인데, 자식의 앞날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교육일꺼라는 숙제를 놓고 돈으로라도 해결해 봐야하는 부모들을 지켜보려니 답답하기만 하다.

윤도현이 부른 "나무"라는 노래의 가사에도 있듯이 넓은 하늘을 꿈꾸며 온 세상을 품에 가득 안아 보고파 세상을 살아가다가 나만큼의 그늘을 드리며 살아가면 되는 것을 너무 많은 걸 이루게 되기를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다음 달이 되면 나도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고, 의무이거나 의지이거나 자식을 잘 키워 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그 녀석도 세상에 나오자마자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예외 없이 교육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인생살이에 어찌 정답이 있을까, 다만 바른길을 가도록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2007. 10. 8. 17:51

남궁 선생님의 사진전을 보고...

지난 개천절날 남궁요설 선생님의 사진전을 보았다. 올해가 88세가 되셨다니 이번이 마지막 전시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며 사진을 둘러보았다.

Ansel Adams와 58년도부터 작업을 함께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미국 시카고의 한 화구점에서 보았던 Ansel Adams의 대형 흑백사진을 연상 시키는 사진이 많았는데, 작품 모두 완벽한 구도와 색상, 사진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마지막까지를 모두 담아 낸 전시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내가 전부터 사진에 담아 보았으면 했던 장면을 모두 걸작으로 남겨 두셨다.
올 여름 미국여행 이후 잠시 누그러 들었던 사진 욕심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대형 사진 전시회로는 돌아가신 김근원 선생님께서 롯데백화점에서 여셨던 사진전, 배병우 교수의 소나무 사진전이후 오래만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진으로 자신의 작품의도를 표현하는 분야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서예에서 해서체가 어렵다고 하듯이, 뛰어난 풍경사진을 남기기 역시 제일 어려운 분야가 아닐까 한다. 누구나 항상 가까이 할 수 있고,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기회가 가까이 있을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될 수도 있기에 더욱 어려운 분야가 바로 풍경 사진이라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최근에 찍었던 사진을 모니터에 올려 보니 너무나 초라한 듯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사진활동을 하려면 신중한 마음으로, 좀더 시간도 들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또 다시 좋은 렌즈, 좋은 기계가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는데,,, 하는 지름신이 들먹이는걸 보면 아직도 사진에 대해 갈길은 멀고, 철이 덜 들었나 보다.
2007. 4. 10. 17:59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아침 출근길에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을 들었다.

이름 봄 거실을 따뜻하게 비추는 따스한 햇살을 느끼게 해주는 곡이다.
듣는 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곡을 작곡하는 음악가 역시 작곡을 하는 과정이 그렇게 편안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직업이 아닌 취미로 작곡을 한다면 즐겁고, 한가로운 마음으로 악상을 그릴 수
있겠지만, 프로로서 일정에 쫓기며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면 그 작품 어딘가에
본인의 마음상태가 배어있을 것만 같다.

교향곡 6번의 1악장을 들을 때 마다 천재란 하늘이 내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베토벤은 어떻게 그토록 평화롭고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걸작품을 수없이 쏟아 낼 수 있었을까?

사람의 능력은 태어날 때 이미 결정이 되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건강이 허락하지않는 상황을 극복하고 대단한 기적을 이루어 낸 베토벤에게 감사할 뿐이다.

흰머리의 나이든 두 연주자, 에후디 메누힌과 빌헬름 캠프의 따스한 연주가
LP 디스크의 재킷과 함께 머리 속에 그려진다.
2007. 3. 27. 18:24

우연 또는 필연 - 2

지난해 이맘때쯤 집 현관의 중문에 새끼 발가락 골절상을 입었다.

큰 녀석 혼인을 한 달 여 남기고 깁스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아주
난감했었다.

반 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며 열흘 넘게 회사를 다니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깁스는 풀고, 보호 붕대 정도만 감고 주의해서 다니라는 의사의 결정에 따라 불편하기는 해도 일반 구두를 신고, 조심 조심 다닐 수 있었다.
그때 신을 수 있었던 구두는 미국에서 관절염 환자용으로 만들었다는 SAS 이다.
다른 구두는 볼이 좁아 붕대를 감고는 신을 수가 없었다.
그 신발은 작년 1월 미국 여행 중에 막내 동생 가족과 함께 카멜이라는 도시로
가던 길목에 국내의 반값이라는 이유로 우연히 사게 되었던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 구두만을 신을 수 있게 된 상황에 처했으니 이 또한 우연인지? 필연인지? 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동생은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구두가 있었기에 발을 다친건지, 발을 다쳤는데, 우연히 구두가 있었던 것인지?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는 꾼 것인지, 나비가 잠시 장자로 머물고 있는 건지? 참으로 인연은 헤어날 수 없는 것인지, 인연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발을 다치기 몇 달 전에 아내가 사 주었던 등산화 역시 붕대를 감고 신을 수 있는 유일한 등산용 신발이고 보니, 아내 역시 무의식적인 예견력이 있는지도 모르겠으니, 그저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순응을 하면서 모든게 필연이야 하며 사는 것이 그리 잘못된 마음가짐은 아닌 것 같다.